좋은 시조

이어폰 / 김선호

서해기린 2022. 5. 13. 12:32
♧♤
정녕 사랑한다면 감춰 두고 볼 일이다
새어드는 빛마저 장막으로 다 가리고
내장된 소리를 꺼내
혼자 들을 일이다

저밖에 모른다고, 사회성 모자란다고
따가운 눈총들이 귓가를 맴돌아도
귓속에 당도한 밀어
누설하지 말 일이다

이 말 저 말 뒤섞여 잡음이 판치는 세상
쓸 만한 말만 골라 또렷하게 들으면서
설중에 매화 피우듯
휘둘리지 말 일이다

'이어폰' 전문 / 김선호

2022년 김상옥백자예술상 우수상 수상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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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와 닿은 시조는 김선호 시인의 '이어폰'이다. 진짜 사랑은 은밀하게, 잡음도 걷어내고 꼭 들을 소리만 골라 듣고 혼자서 하란다. 외부와 단절된 이어폰 속 세계는 더 내밀하고 그 사랑은 달콤할 것이다. 휘둘리지도 않고 절대 누설되지 않는 혼자만의 세계는 그만의 짜릿하거나 그윽한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.

전철에서 보면 이어폰을 끼고 폰으로 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어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평소에도 잘 쓰지 않는다. 그거 많이 쓰고 난청이 된 조카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. 폰을 볼 때도 있지만 맞은편에 일렬로 등장한 신발들을 관찰하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더 좋다.
곁님은 러닝머신에서 tv 화면을 보며 이어폰 속을 여행하지만 나는 귀에 그걸 꽂으면 괜히 답답하고 거추장스럽다. 바깥 창으로 바짝 다가온 벚나무가 있어서 그것들과 눈인사 하는 게 더 좋다.

내가 이어폰을 많이 쓰던 때는 먼 먼 아가씨 시절 서울 구의동에서 미아동까지 출퇴근할 때였다. 지금의 폰보다는 좀 더 묵직한 '마이마이'에 일어로 된 '이쯔와 마유미' 테이프를 넣고 '고이비토요'를 비롯한 그녀의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 들었다. 일어를 배울 때였는데 그녀는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정말 잘했다.
이 시조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난다.

이참에 나도 이어폰과 좀 친숙해져서 그 속에서 보다 내밀해져 볼까. 마침 하루가 다르게 연두와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5월이다.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.

#시조 #김선호 #김상옥백자예술상