애비는 종이었다.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.
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.
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…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
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.
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
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.
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.
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.
어떤 이는 내 앞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
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
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.
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
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
몇 방울의 시가 언제나 섞여 있어
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
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.
-서정주-
아네모네 꽃
문우들과 이 시의 한 행
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,를 가지고모방시를 써 보기로 했다.
나는, OO해 동안 나를 키운 건 결핍,이라 했다.
어떤 이는 비,라 하고
어떤 이는 구름,이라고도 했다.
햇빛, 사랑, 같은 긍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.
볕과 사랑 없이 어떻게 커 왔을까마는
시는 만족하면 태어나기 어려운가 보다.
행복하면 좋은 시가 안되나 보다.
누구나 비바람, 눈보라 맞으며
상처 입으며 커가는 것인가 보다.
모 CF는 이를 인용해서
나를 키운 건 팔할이 햇반이다,고도 했다.
밥 같은 기본적인 것 말고
진실로 나를 키운 건 무엇일까?
'좋은 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꽃 피는 공중전화, 드라이 아이스/김경주 (0) | 2012.05.26 |
---|---|
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/김경주 (0) | 2012.05.22 |
가시는 생각, 오시는 생각/한영옥 (0) | 2012.04.12 |
마음이여/이상국 (0) | 2012.04.10 |
풀리는 강가에서/조향순 (0) | 2012.04.06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