습(濕)
조경선
1.
아내가 돌아오고 비만 나린다
모든 게 건조하다
나갈 때 손보다 들어올 때 손이 더 낯설다
실루엣은 나오지 않고
그림자가 며칠 째 칩거중이다
퉁퉁 불은 여닫이문과 문틀이
신경질적으로 달라붙는다
어디서부터 함부로 뒤틀렸나
힘껏 잡아당길 때
손끝에서 시작된 떨림이
파르르 등 끝까지 치민다
그래, 뼈 속까지 닫았구나
문이 나를 꽉 물고 놓지 않는다
아내와 나는 여는 사람인가 닫는 사람인가
문은 끝내 열리지 않고
계절과 계절 사이 끼워둔 경첩이 먼 기척으로 남는다
2.
때를 놓치고 물밥을 먹는다
대문 밖 빗소리가 낯설다
구름이 쏟아낸 전말이
물기를 먹은 풀들과 함께 쓰러진다
저것은 불편한 고별사
목이 메이지 않는 건
비의 소관에서 이미 벗어났기 때문
어제 뱉은 말이 자꾸 집착으로 다가오는데
촘촘한 빗줄기 속 빠져 나갈 틈은 없다
마지막이 항상 처음이라 믿는다
저 발칙한 꼬리
살쾡이가 비린내 나는 내 처음을 물고 간다
당신이 돌보지 않는 눅눅한 밤을 지나
당신이 돌아보지 않는 새벽을 지나
당신에게 발각되고 싶은 아침이 있다
부재를 견디며 익사중이다
지금 난, 만수위다
-《 제15회 시흥문학상 수상작》